몰입할만하면 흐름이 끊긴다는 이유로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집은 읽어보고 싶었다. SF와 사랑과 인간에 대한 생각이 한데 버무러져 있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처음엔 어떻게 이런 재밌는 소설을 쓸 수 있지? 하며 읽다가, 나중에는 너무 이해하기 힘들어서 읽기가 싫었다. 뒤로갈수록 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지못해 헤매었다. 읽자마자 극찬할 수밖에 없던 <대니>가 맨 첫작품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까..
그 뒤에 읽었던 <쿤의 여행>이나 <굿바이>도 독특한 소설이긴 했으나 <대니>만큼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쿤의 여행>은 하기싫은 일을 대신 해주던 쿤이라는 존재를 떼어내자 15살의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굿바이>는 기계의 몸에 뇌를 옮겨 영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화성을 개척하러 가는 시대가 배경인데, 화자가 도대체 누굴까했더니 주인공 뱃속의 태아였다. 세상에.. 표제작인 <러브 레플리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 락밴드 X-JAPAN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제목이라는데, 특이한 단어라서 눈길이 갔으나 소설 내용에는 큰 매력을 못느꼈다. 어른은 사라진 채 아이들만 남은 곳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일을 대신한다. 화폐 사용조차 곧 중지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얀이라는 여자를 만나 같이 살게된다. 부모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들은 얀의 노트북을 통해 얀의 부모님 얼굴을 보게 되고, 부모님이 계셨던 장소로 가보지만 그곳엔 거리를 헤메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소설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래저래 신선한 소재가 많았으나 오히려 <대니> 다음으로 마음이 갔던 소설은 <루카>였다. 제6회 젊은작가상수상작이라고 얼핏 본 것 같은데.. 젊은작가상 심사위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선정을 잘하는 것 같다. 젊은작가상수상집을 한번씩 빌려보는데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루카>는 교회에 한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동성애자 아들 루카, 가족도 누구도 필요없고 루카만 있으면 되는 딸기의 이야기다. 루카와 딸기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고 함께있는 시간이 어색해지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깎여나간 연필심이라든가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떨어져서 자고 있었다든가.. 근데 그런 부분보다는 루카의 목사 아버지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교회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 두 가지는 양론할 수 없다고 믿은 아버지는 둘 중 하나를 자신의 마음에서 죽이기로 한다. 루카가 죽었다고 믿었으나 친손주 돌잔치에서 루카를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남미에서 동물원을 찾으러 루한이라는 도시에 갔던 경험담과 함께 풀어낸다. 끝도 보이지 않고 가야할 길도 명확하지 않은 채 혼자 걷던 외로운 길이 자신의 아들 루카가 걸어왔던 길이였을 거라고 생각하자 그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나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그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라도 그 고통을 느껴보고, 상대방을 헤아려보려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다. 루카와 딸기는 서로를 사랑했을진 모르지만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싶다. 단순히 사랑으로만 이어나가기엔 인간관계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그 둘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상대방을 보듬어 줄 수 있겠지. 레플리카신발 의도하는 바대로 내가 잘 읽은 지는 모르겠지만 한 소설집에서 두 작품이나 마음에 담을 수 있었으니 만족한다.
|